세상사

미국 로펌은 어떻게 굴러가고 있나, 투자은행처럼 변하는 미국 로펌들

rockfish 2026. 9. 2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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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펌들이 예전과 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때 미국 로펌의 전형이었던 크래버스 시스템은 커클랜드 시스템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디 이코노미스트는 29일 "인재 영입 경쟁이 로펌의 사업 모델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미국의 로펌들은 한때 규모가 작았으며, 변호사를 다섯 명도 채용하지 않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1903년 폴 크래버스라는 진취적인 변호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로펌의 규모를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로스쿨을 갓 졸업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직접 뽑아 몇 년 동안 강도 높게 일하게 한 뒤, 그중 최고의 인재를 로펌의 파트너로 승진시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역사학자 웨인 칼 홉슨은 약 70년 뒤 이 제도의 결과를 두고, “이름 없는 조직인간들”이 대거 배출됐으며 이들은 “회사가 더 이상 승진시킬 수 없다고 통보할 때에만”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고 썼습니다. 미국의 거의 모든 로펌이 이른바 ‘크래버스 시스템(Cravath system)’을 채택하게 됐습니다.


이제 이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으며, 파트너십 모델도 함께 흔들리고 있습니다. 유명 로펌의 거물급 변호사들이 잇따라 이적하면서 미국의 전통적인 대형 로펌 세계는 마치 프로 스포츠 리그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데이터 업체 슈어포인트(SurePoint)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 중순까지 미국에서 매출 기준 상위 200개 로펌 가운데 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파트너는 3,200명이 넘었습니다. 이는 2021년 한 해 전체보다 많은 수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이직이 주로 중견급 로펌에 국한됐지만, 이제는 가장 명망 높은 로펌들로까지 확산됐습니다. 지난 7월에는 왁텔, 립턴, 로젠 & 카츠(Wachtell, Lipton, Rosen & Katz)의 소송 부문 공동대표였던 윌리엄 새빗이 회사를 떠나 깁슨 던(Gibson Dunn)으로 옮겼습니다. 크래버스, 스웨인 & 무어(Cravath, Swaine & Moore)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44년부터 지금의 이름을 사용해온 이 로펌은 9월 유명 인수·합병(M&A) 변호사인 마이클 아이엘로를 와일 고트셜(Weil Gotshal)에서 영입했습니다.

크래버스 시스템이 압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나이 든 변호사들은 1980년대 중반 스타 파트너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로펌으로 성장했던 신생 로펌 핀리 쿰블(Finley Kumble)의 사례를 경고의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이 로펌은 1988년 변호사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막대한 보수와 내부 갈등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한 차례 다툼에서는 한 변호사가 다른 변호사의 유리 상판 커피 테이블을 깨뜨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 모델에 대한 위협은 더욱 커졌으며, 그 중심에는 커클랜드 & 엘리스(Kirkland & Ellis)의 부상이 있습니다. 시카고에서 설립된 이 로펌 역시 다른 로펌의 변호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면서 빠르게 성장했지만, 핀리 쿰블에는 없었던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모펀드 업계 거물들에게 자문하는 수익성 높은 사업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급여 파트너(salaried partners)’를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지분 파트너(equity partners)와 달리 로펌의 소유 지분을 갖지 않습니다. 커클랜드는 2025년에 업계 사상 최대인 106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변호사들에게 역시 사상 최고 수준의 보수를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경쟁 로펌들도 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연간 보수가 1,000만 달러를 넘는 것은 한때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스타 변호사(rainmaker)가 회사를 옮길 경우 2,000만 달러, 심지어 3,000만 달러까지 요구할 수 있습니다. 헤드헌터들은 많은 파트너들이 조직문화나 업무 분야를 바꾸기 위해 이직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료 변호사들은 더 냉소적입니다. 한 유명 로펌의 소송 전문 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우리 로펌에서는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결국 돈 때문입니다.”

다른 로펌들에게는 ‘커클랜드화(Kirklandisation)’가 사실상 필수가 됐습니다. 고객들은 갈수록 로펌이 광범위한 전문 분야에서 전 세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기대합니다. 따라서 변호사를 영입하는 것은 새로운 사무소나 전문 분야의 거점을 마련하고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변호사협회(ABA)라는 전문단체가 경업금지약정(non-compete agreement)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변호사들은 자신의 인맥 목록을 그대로 새로운 직장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로펌의 규모가 커지면서 많은 고객들이 로펌 자체보다 특정 파트너와 관계를 맺게 됐습니다. 뉴욕의 한 파트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에는 로펌을 고용했습니다. 이제는 개인을 고용합니다.”

개인은 회사의 수익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많은 파트너들은 2016년 스콧 바셰이가 크래버스에서 폴 와이스로 옮긴 것을 ‘프리에이전트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봅니다. 여러 정황을 보면 바셰이는 이적 후에도 막대한 수익을 계속 올렸습니다. 동시에 그는 현재 자신이 이끌고 있는 폴 와이스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올해 바셰이가 2025년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로펌을 겨냥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폴 와이스가 트럼프 행정부와 합의에 이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합의의 내용 가운데 하나로 폴 와이스는 행정부가 승인한 단체나 대의를 위해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202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폴 와이스의 파트너들은 다른 어느 동급 로펌의 파트너들보다 카멀라 해리스에게 더 많은 정치후원금을 기부했습니다.

하지만 경쟁 로펌에서 인재를 빼오는 전략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사기관 디사이퍼 인베스티거티브 인텔리전스(Decipher Investigative Intelligence)는 외부 영입한 파트너의 60% 이상이 약속했던 만큼의 새로운 사업을 가져오는 데 실패한다고 추산합니다. 그리고 그중 절반은 5년 안에 회사를 떠납니다. 헤드헌터 스콧 야카리노에 따르면 많은 영입 계약에는 1~3년간의 보수 보장 조항이 붙기 때문에, 로펌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스타 변호사와 관계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천만 달러가 걸린 영입에 여러 차례 베팅하다 보면 그 대가는 매우 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로펌의 경영 파트너들은 인재를 빼오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여러 차례 핵심 인력이 빠져나간 데다 그에 상응하는 영입에도 실패한 와일 고트셜은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왁텔조차 연공서열에 기반한 보수체계와 ‘작지만 강한(lean and mean)’ 운영방식을 모두 완전히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로펌 업계는 더 적은 수의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며, 커클랜드와 비슷한 모습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과거의 끈끈하고 폐쇄적인 로펌 문화가 주던 안락함에 익숙한 파트너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불안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소송 전문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일부 변호사들은 대형 로펌을 떠나 19세기 미국 변호사 업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소규모 부티크 로펌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반면 다른 이들은 미래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과거 커클랜드에서 일했던 데이비드 폭스는 변호사 몇 명만 고용하고 나머지 업무는 봇에 맡기는 여러 ‘AI 우선(ai-first)’ 로펌 가운데 하나를 설립했습니다. 폭스는 자신의 소프트웨어가 파트너 승진을 앞둔 변호사만큼의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커클랜드화’는 어쩌면 크래버스 시스템 내부에 존재하던 문제를 드러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로펌의 규모가 100명 안팎의 파트너를 넘어 커지면, 대개 소수의 그룹이 로펌을 운영하는 구조로 귀결됩니다. 그렇게 되면 커클랜드의 급여 파트너 모델이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업계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로펌들이 언젠가는 현재의 파트너십 구조를 완전히 없애고 외부 투자자를 받아들여 규모가 작은 경쟁사들을 인수합병할 것이라는 관측이 수년 전부터 나왔습니다. 투자은행업계는 이미 오래전에 대규모 지분 파트너십을 버리고 통합 과정을 거쳤습니다. 대형 로펌(Big Law)도 머지않아 그 뒤를 따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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