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시대, 공급 부족의 경제, 보호주의와 탈탄소 역행으로 귀결될까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급 부족에 따른 각종 물가 상승, 경기 하락을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사실 200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세계 경제의 문제는 공급 부족이 아닌 소비 부족이었습니다. 가계는 경제적 고통을 걱정하며 빚을 갚는 데 힘썼고 정부는 긴축 기조를 이어가곤 했습니다. 기업도 투자를 보류했죠. 경제 3주체가 모두 돈 쓰기를 주저했던 게 불과 몇 년 동안의 노멀이었습니다.
지금은 지출이 다시 높은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정부는 확장재정을 통해 경기부양책을 추진했고 소비자들도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수요가 너무 급격히 늘어나며 공급은 이를 따라잡기 벅찬 상태가 됐습니다.
육상/해상 할 것 없이 운송 비용이 치솟게 됐는데 막대한 운송량을 소화하기 어려워 항구의 기능이 마비되는 일도 있습니다. 알다시피 전력난으로 에너지 비용 역시 고공행진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큰 걱정입니다.
2010년대의 과잉경제는 2020년대에 이르러 부족경제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직접적 원인은 코로나입니다.
10조 달러의 어마어마한 글로벌 경기부양 자금은 매우 공격적이면서도 한쪽으로 치우친 소비 확대를 촉발했습니다. 즉 소비자들은 물건을 사는 데 평소보다 많은 돈을 투입했고 그동안 투자가 매말랐던 글로벌 공급 사슬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전자기기 수요는 코로나 확산기에 크게 늘었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품의 부족은 대만과 같은 수출형 경제의 산업생산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은 아시아의 섬유 공장을 폐쇄하게끔 했습니다 .
선진국에서는 이민 인구가 줄어드는 데 경기부양책으로 우리의 재난지원금 같은 형태의 각종 현금이 가계에 주어지자 수요가 많은 업무를 하기 원하는 충분한 노동자들이 부족해졌습니다.
사업주들은 구인난에 허덕일 수바껭 없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이런 공급부족 경제는 두가지 근본적 원인이 있습니다.
1. 탄소중립 정책
석탄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에 관한 취약성을 더 부각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혹은 탈탄소의 영향에 따라 탄소 가격이 상승하고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에너지 사용을 점점 더 까다롭게 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엄격한 환경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시나 석탄 사용을 줄이고 다른 방안을 강구하게 함으로서 전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운임료나 부품 가격이 오른 것도 기업들의 설비확장을 위한 자본 지출을 키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오염이 심한 에너지 사용을 중단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에 화석 연료 산업을 향한 장기적 투자는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2. 보호주의
세계적으로 교역 기조가 보호주의로 가고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때 강화됐던 보호주의는 전세계적으로 노멀이 돼 버리고 있는듯 한데요.
각국의 교역 정책에서 경제적 효율성 보다는 지정학적으로 적대적 위치에 있는 국가나 세력에 보복이나 위협을 하는 수단으로서 환경이나 노동 기준을 부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트럼프 시절에 도입됐던 대중국 교역 정책을 이어나가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기조는 전세계적으로 경제 민족주의로 이어질 수 있고 공급부족을 더 가속화하는 요인이 됩니다.
예컨대, 영국은 현재 대형 화물트럭 운전수가 부족하다고 하는데요. 브렉시트 탓에 이에 따른 고통이 더 심하다고 합니다.
이런 각국의 교역상의 긴장상태가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해외 투자도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악몽 재현되나
요즘 공급 부족 상황을 보면서 1970년대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석유가 귀했고 물가가 두자릿수 상승을 하고 있는데 경제 성장은 크게 부진하는 안 좋은 때였습니다.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었죠.
더군다나 정치가 이에 대응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경제학적 역량이 지금보다 떨어졌다는 문제도 있었을 겁니다. 미국만 놓고 보면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로 물러나는 때이기도 해서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웠기도 하고요.
당시 정치권은 인플레이션을 맞아 가격 통제와 같은 무의미한 수단을 썼습니다. 닉슨에 뒤를 이어 (부통령이었기 때문에 선거 없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는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구호를 외쳤지만 국민들에게 절약 장려, 채소를 직접 키우기 등을 촉구하는 등 지금 생각하면 다소 무용한 방안들을 내놓았습니다.
다만 오늘날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는 힘과 의무를 지녔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통제 범위 밖의 인플레이션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시선도 나옵니다.
전력 가격은 이번 겨울 이후 안정될 수 있어 보입니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는 현재의 악조건을 완화할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재화에 돈을 썼던 것에서 서비스에 들이는 비용을 늘려나갈 것이고 재정을 활용한 경기부양은 내년에 줄어들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막혔던 것들이 서서히 정상화되고 또 과잉이었던 것들 역시 안정화되면 지금의 인플레이션+저성장 = 스태그플레이션 상황도 많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공급 부족 상태의 밑바탕에 깔린 근본적 원인이 바로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수소를 비롯한 청정 에너지 관련 기술이 언젠가는 경제적이면서도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겠지만 지금 당장 에너지 부족 상태를 해결하고 탄소중립으로 나아가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결국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탄소중립 등에 관한 반발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탄소배출 목표치를 다소 수정하면서 타협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탄소중립이나 탈탄소가 환상적으로 경제 붐을 일으킬 것인 양 했다가는 경제에 큰 실망감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보호주의가 인플레이션을 키운 측면도 있지만 인플레가 보호주의를 더 심화시키는 악순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과 다르며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오판을 할 여지는 있습니다. 탈탄소로 가는 흐름을 중단하려 한다든지, 보호주의로 대응하려고 한다든지, 이런 반동적 대응을 한다면 장기적으로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환경이나 재해로부터 안전과 같은 소중한 가치를 놓치게 될 수 있는 셈이죠.